유럽축구의 양대 리그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한국 선수들은 단순히 국내 팬들의 자부심을 넘어서, 아시아 축구의 수준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박지성, 손흥민, 차범근 이 세 선수는 각각의 리그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들의 커리어를 비교해보며 각 리그에서 어떤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었는지, 리그 간의 차이는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EPL에서 전성기를 누린 박지성과 손흥민
박지성과 손흥민은 모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아시아 축구의 위상을 높인 대표적인 선수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리그에서 뛰었지만 시대, 포지션, 역할, 그리고 팀 내에서의 위상이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비교 대상입니다.
박지성은 2005년 PSV 에인트호번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며 EPL 무대에 입성했습니다. 그 당시 맨유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팀 내에는 루니, 호날두, 긱스, 스콜스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즐비했습니다. 그 속에서 박지성은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전술 병기’로 불렸습니다. 그는 기복 없는 체력과 지능적인 움직임, 수비 가담 능력으로 빅매치에 자주 출전하며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특히 아스널, 첼시 등 강팀과의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큰 경기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박지성의 프리미어리그 커리어는 단순한 기록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그는 아시아인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밟았고,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4차례나 경험하며 팀의 핵심 로테이션 자원으로 활약했습니다. 그의 헌신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팬들뿐만 아니라 동료 선수들과 감독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반면 손흥민은 토트넘 홋스퍼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EPL을 지배했습니다. 2015년 레버쿠젠에서 이적한 손흥민은 초반에는 적응 문제와 부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후 시즌을 거듭할수록 토트넘의 핵심 공격수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는 EPL 역사상 아시아 출신으로서는 유례없는 득점력을 선보이며, 2021-22 시즌에는 리버풀의 살라와 함께 공동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의 대기록이며, 프리미어리그 전체에서도 손에 꼽히는 기록 중 하나입니다.
손흥민은 뛰어난 양발 능력, 스피드, 침투 능력, 결정력 등 다양한 공격 재능을 바탕으로 프리미어리그 수비진을 공포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는 전술적으로도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으며, 공격의 시작과 마무리를 모두 책임지는 현대 축구의 이상적인 공격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토트넘 내에서 해리 케인과의 호흡은 EPL 최고의 듀오 중 하나로 불리며 수많은 골을 합작했습니다.
이처럼 박지성과 손흥민은 같은 EPL 무대에서 뛰었지만, 박지성은 헌신과 전술적 이해로 팀 전술에 기여했고, 손흥민은 개인 능력을 바탕으로 팀의 핵심 에이스로 활약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EPL이라는 최고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렸으며, 그들의 활약은 후배 선수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분데스리가에서 전성기를 이룬 차범근
차범근은 한국 축구 역사에서 전설로 꼽히는 인물이며, 유럽 무대에서도 그 명성을 떨친 최초의 아시아 선수입니다. 차범근의 축구경력은 단지 선수 개인의 성공을 넘어, 아시아 선수가 유럽에서 인정받는 출발점이자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됩니다. 차범근은 1978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다름슈타트 입단을 시작으로 유럽 무대에 진출했으며, 이후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을 거치며 10년 동안 독일에서 활약했습니다.
차범근의 플레이 스타일은 당시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속도와 파워를 겸비한 공격수로서, 그는 "차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독일 팬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308경기 출전, 98골이라는 성적은 외국인 선수로서는 이례적인 수치였으며, 프랑크푸르트 시절에는 UEFA컵 우승, 레버쿠젠에서는 독일 컵 대회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분데스리가 역사상 외국인 공격수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선수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많은 독일 매체와 팬들이 "차범근은 독일 축구에 큰 영향을 준 선수"라고 평가합니다.
차범근이 활동했던 시대는 지금과는 달리 외국인 선수에 대한 차별이 심했고, 아시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강한 정신력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팀 내에서 입지를 굳히며 리그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언어 장벽, 문화 차이, 체력과 피지컬 차이 등 수많은 장벽을 이겨내고 그는 독일 축구의 중심으로 우뚝 섰습니다.
더욱이 그의 성공은 이후 수많은 한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박지성, 손흥민, 구자철, 이재성, 황희찬 등 많은 후배 선수들이 독일 무대를 통해 유럽 진출을 시도했고, 차범근이 남긴 발자취는 그들에게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분데스리가는 현재까지도 한국 선수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진출 가능성이 높은 리그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차범근이 만들어낸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서 뛰어난 성과를 통해 실력으로 인정받은 최초의 아시아 선수이며, 한국 축구사에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의 전성기는 단지 축구적인 성공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 축구 전체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두 리그에서의 차이점과 상징성
EPL과 분데스리가는 축구 스타일, 문화, 리그의 구조 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며, 한국 선수들이 각각의 리그에서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먼저 EPL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중계권 수익과 상업적 가치를 지닌 리그로, 경기의 속도와 피지컬, 전술적 유연성이 특징입니다. 팀마다 전술이 자주 바뀌고, 감독의 스타일에 따라 선수의 기용 방식도 유동적입니다. 팬들의 기대치도 높아 압박감이 상당하며, 매 경기 전 세계적으로 중계되기 때문에 선수에게 요구되는 미디어 대응 능력도 큽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박지성과 손흥민은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했습니다. 박지성은 꾸준함과 전술적 헌신을 통해 감독의 신뢰를 얻었고, 손흥민은 특출난 개인 기량으로 팬들과 전문가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EPL은 스타 플레이어에게 기회가 집중되기 때문에,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손흥민의 사례는 더욱 특별합니다.
반면 분데스리가는 체계적인 유소년 시스템과 과학적인 피지컬 훈련, 철저한 전술 이해를 요구하는 리그로 유명합니다. 차범근은 이러한 분데스리가에서 압도적인 스피드와 결정력으로 큰 임팩트를 남겼으며, 당시의 인종적 편견과 환경적 장벽을 스스로 극복했습니다.
리그 간의 상징성도 차이가 있습니다. EPL은 글로벌 스타들의 무대, 분데스리가는 체계적인 축구 시스템의 상징입니다. EPL에서 활약한 선수들은 미디어와 상업적 가치 측면에서 큰 성과를 남기며 한국 축구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고, 분데스리가에서 성공한 선수들은 유럽 무대에서 실력으로 인정받으며 아시아 선수의 가치를 끌어올렸습니다.
결국 박지성, 손흥민, 차범근 이 세 선수는 각자의 리그에서 전성기를 누리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한국 축구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이들의 성공은 단지 개인 커리어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 축구의 위상을 높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은 서로 다른 리그와 시대에서 전성기를 보낸 한국 축구의 아이콘들입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전설로 불린 차범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팀을 위한 헌신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박지성, 그리고 EPL 득점왕에 오르며 글로벌 스타가 된 손흥민. 이들의 커리어는 각기 다른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한국인이 유럽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이들의 전성기는 후배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되었고, 지금도 유럽에 도전하는 많은 선수들에게 ‘한국인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