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시대와 전술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온 스포츠입니다. 그중에서도 윙백이라는 포지션은 전술적 흐름의 변화에 따라 역할이 가장 크게 확장된 포지션 중 하나입니다. 과거 수비 중심의 역할에서 시작해, 오늘날에는 팀 전술의 핵심 축으로 거듭난 윙백 포지션의 진화는 유럽 축구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열쇠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1990년대부터 2024년까지, 유럽 각 리그에서 윙백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했는지 그 흐름을 1990~2000년대 초, 2000~2015년, 2016~2024년 순으로 , 수비의 외곽 보조에서 공수겸비 전술핵심, 포지션유동화, 하이브리드시대로 변화되는 과정을 되짚어보겠습니다.
1990~2000년대 초: 수비의 외곽, 보조적 존재였던 윙백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유럽 축구에서의 윙백은 오늘날과 같은 핵심 전술 자원이라기보다는 전통적인 포백 수비 라인의 일원에 가까웠습니다. 포지션 명칭도 윙백보다는 풀백이라는 용어가 더 일반적이었으며, 수비적인 임무 수행이 절대적인 우선순위였습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의 게리 네빌이나 세리에 A의 지안루카 페소토처럼 이 시기의 윙백들은 측면을 수비하고 라인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죠. 오버래핑이나 공격 가담은 있더라도 제한적이었고, 그것조차도 팀 전술상 허용된 범위 내에서 이뤄졌습니다.
라리가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지만, 기술과 패스워크에 더 강점을 둔 문화 덕분에 풀백의 움직임이 조금 더 유연했던 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비가 우선시되는 포지션이었고, 오늘날처럼 중원으로 치고 들어가거나 빌드업의 주축이 되는 형태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대부분의 팀들이 전통적인 4-4-2 혹은 3-5-2 시스템을 고수하며 윙백에게는 공간 봉쇄와 상대 측면 봉쇄라는 기본 임무 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조롭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시기의 윙백은 전술의 정형성이 뚜렷했던 시대의 상징이었고, 현대축구의 빠른 전술 변화와 비교했을 때 확실한 대비를 보여줍니다.
2000~2015년: 공수 겸비, 전술 핵심으로의 부상
2000년대를 지나면서 축구는 그야말로 '전술의 다양화' 시대를 맞이합니다. 점유율 축구, 하이프레스, 포지션플레이 등 다양한 전술 트렌드가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윙백의 역할도 단순한 수비를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애슐리 콜의 전성기가 윙백의 공격적 역할을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안정된 수비 능력은 기본이고, 빠른 오버래핑과 정확한 크로스, 공격 시 전방으로 치고 올라오는 과감한 움직임은 상대에게 큰 위협이 되었죠.
라리가에서는 다니 아우베스가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 전술 속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메시와의 연계 플레이는 마치 윙어 못지않은 공격력을 자랑했고, 수비진에서 시작된 공격이 그의 발을 거치며 박스 안까지 이어지는 장면은 익숙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한편 세리에 A에서도 마이콘과 잠브로타 같은 선수들이 등장하며, 이탈리아 축구에서도 윙백의 공격적 활용이 점차 강화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양방향 플레이어’로서의 윙백입니다. 한 경기에 수비와 공격을 모두 소화해야 했고, 따라서 뛰어난 체력, 공간 인식 능력, 패스 능력이 필수적인 덕목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단순히 속도만 빠르거나 수비에만 강한 선수는 윙백으로서 경쟁력을 갖기 어려워지고 양방향 플레이어 선수들을 이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2016~2024년: 포지션의 유동화, 하이브리드 시대
최근 10년간 축구는 포지션의 고정 개념이 무너지는 '하이브리드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윙백은 단지 측면을 오가는 선수가 아니라, 전방 빌드업을 주도하고, 필요시 중원으로 들어가 경기를 설계하며, 심지어 공격의 피니셔 역할까지 겸합니다. 리버풀의 트렌트 알렉산더-아널드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전통적인 윙백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수행하면서 팀의 패스 루트와 전개 속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바이에른 뮌헨의 알폰소 데이비스 역시 전형적인 하이브리드 윙백입니다. 폭발적인 속도를 바탕으로 단독 돌파가 가능하며, 박스까지 진입해 직접 슈팅까지 하는 플레이는 전통적인 윙백의 범위를 이미 넘어서 있습니다. 주앙 칸셀루는 한술 더 떠, 경기 중 중앙 미드필더처럼 플레이하며 포지션을 넘나드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개별 선수의 능력 때문만이 아닙니다. 펩 과르디올라, 위르겐 클롭, 토마스 투헬 등 현대 축구를 이끄는 전술가들이 윙백을 단순한 외곽 자원이 아닌, 핵심 설계자로 보면서 전술 구성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빌드업, 전방 압박, 전환 플레이 등 거의 모든 축구 전술 요소에서 윙백은 필수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는 곧 유소년 육성 시스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술력과 판단력을 갖춘 윙백을 키워내는 것이 각 클럽의 중요한 육성 목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결론
1990년대부터 2024년까지, 유럽 축구에서 윙백의 위치는 단순한 보조에서 핵심으로 진화되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요구되는 역할이 달라졌고, 그에 맞는 선수가 스타가 되었으며, 전술 역시 이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축구는 계속 변화할 것이며, 그 변화 속에서도 윙백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입니다. 유럽 축구의 흐름을 읽고 싶다면, 그 시대를 지배한 윙백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들의 발자취 속에 축구 전술의 진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요.